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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의학과 정태섭 교수 '엑스레이 아트' 개척, 초중고 미술교과서 등재

조회수 : 284등록일 : 2021-09-28

"엑스레이 영상에 아날로그 감성을 심다"

정태섭 교수 '엑스레이 아트' 개척...초중고 미술교과서 등재 '인싸' 작가
평범한 일상 속 소소한 행복 찾기...'내면의 미' 찾아가는 여정 '윤택한 삶'


▲영상의학과 전문의이자, '엑스레이 아트'작가로 활동 중인 정태섭 교수


영상의학과 전문의이자 '엑스레이 아트' 작가로 활동 중인 정태섭 교수(가톨릭관동의대 국제성모병원 영상의학과)를 양재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의사이자 예술가의 오롯한 공간, 방…. 여느 아티스트의 작업실과는 달리 컴퓨터와 대형 프린터, 대형 스크린, 컴퓨터 주변 기기들로 가득 메웠다. 고작해야 13평 남짓한 이 곳에서 한국 미술사의 한 점을 찍는 그림들이 세상에 선보인다. 

정태섭, 그는 한국 화단의 독보적인 아티스트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시작한 작품 활동은 한마디로 태생이 '아웃사이더'였다. 

하지만,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 소위 잘나가는 의대 영상의학과 교수가 시작한 그림이 한국 '엑스레이 아트' 작가로 기성화단의 호평을 받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성 전업 작가들이 볼 때는 참 세상이 불공평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그렇게 운이 좋았을까? 막상 곁에서 작업과정 면면을 들여다보니, 그리 쉽게 말할 일이 아니었다. 

'작가의 삶은 고단하고, 예술은 고통을 먹고 태어난다.'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엑스레이 사진에 디지털 작업을 병행해 선보이는 그의 그림들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소개되기도 했고, 초·중·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 실리는 등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요즘말로 소위 '인싸' 작가다. 세계 화폐 수집·별자리 관측·넥타이와 핸드백 디자인 등 스무 가지가 넘는 취미의 소유자로도 알려진 정 작가.

요즘에는 만드는 것에 푹 빠져 있다.

디지털생활은 감성이 모자란다.
예술은 아날로그다. 아날로그는 스폰지와 같아,
많은 물이나 영양소를 흡수하고 뿜어낼 수 있다.
디지털은 아주 간소화되면서 알맞은 팩트로만 추려지다보니
아날로그와 공존해야 서로 상생하며 같이 발전하더라. 


예술적인 소양은 타고 났던 걸까요?

선친께서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어요. 귀국 후 진주고등학교 미술선생님으로 재직했지요. (덕수상고 교장선생님으로 퇴직했는데)선친께서는 '공업과 디자인이 어떻게 잘 융화할 수 있을까?'를 항상 연구했어요. 위로 두 형을 두고 막내로 자란 저는 그런 아버님께 틈틈이 드로잉을 배웠어요. 집안 분위기요? 나중에 공대를 진학한 두 형들과 함께, 부수고 항상 새로운 뭔가를 만드는 분위기였죠. 
 

어쩌면 의사가 되기보다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겠네요?

고등학교 때 성적이 좀 됐어요. 선친의 꿈이 '미술과 과학의 융합'이었고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롤모델이었죠. 막내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그림과 만들기를 좋아했으니 자연스럽게 의대를 권유했어요. 저요? 글쎄요. 선친이 아니었다면 공대에 진학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2007년)어느 날 호기심을 시작으로 한국 첫 '엑스레이 아트'가 탄생했습니다. (전업작가)누군가는 평생을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순간을 교수님께서는 단번에 이뤄냈어요. 
풍선을 불 때 풍선이 어느 지점에서 터지게 될 것인가? 그 어느 지점에서 터질 때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능력이 활성 되는 하나의 키포인트가 된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힘들여 계속 불면 커지다가 언제가는 터지겠지요. 하지만 뭔가 좋은 기회가 와서 외부에 탁하고 찔러주면 펑 터지는, 그런 지점도 있지 않겠어요? 그 시점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또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풍선이 터진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 순간들은 사람마다 다 다르겠죠. 나 같은 경우는 의사로 교수로 생존하려니 일상이 연구와 진료에만 몰두해야 하는 나날의 연속이었어요. 긴장의 연속이었죠. 그러다보니 뭐랄까 혼자 있는 밤이 되면 가슴 쓰리게 저며 오는 먹먹한 순간이 찾아옵디다. 그 때 이것저것 스케치도 하고 관심 있는 사진들을 들춰봤지요. 그런데 이 사진이란 것이 바쁜 일상에 따로 찍을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그렇게 들여다 본 엑스레이 필름에서 새로운 세계를 본거죠. 그렇게 시작한 겁니다.


▲정태섭교수作, 바이올린 위의 선율. 피그먼트 프린트, X-레이, 다이섹. 72x150cm.2010
이 작품은 바이올린 연주자의 모습을 해골과 목·손뼈·근육 등, 연주자의 내면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바이올린의 선율과 바이얼리니스트의 깊은 감성 '내면의 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은 발표 당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처음 전시가 가장 기억에 남겠지요. 첫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가로 데뷔하기까지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어느 인터뷰에 "전시는 언제 하느냐"는 물음에 "내년 봄이면 하겠죠"라고 가볍게 답한 것이 기사화되면서, 할 수 없이 시작하게 됐죠. 준비해 둔 그림을 가지고 10 여 군데 갤러리 문을 두드렸는데, '의대 교수가 할 일 없어 이러냐', '이게 과학 영상이지 어디 감성이 들어 있느냐', '요마만한 크기로 무슨 전시를 하겠냐' 등 혹독한 말과 함께 문전박대 당했어요.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것이 다 족보였어요. '감성 없다', '색깔이 없다', '싸늘하다' 등등 그것들을 복기해 그림 속에 마음을 넣고 나만의 색을 입히니 그림들이 점점 더 좋아지더군요. 그러다보니 12번째 갤러리에 드디어 그림을 걸게 됐죠. 그렇게 시작한 전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됐고, 또 개인전 언제 여느냐는 질문에 "일년후에 하겠다"라고 답하고 결국 개인전도 하게 됐답니다. 말과 운이 맞춰져 '강제적인 전시'를 하게 된 거죠. 그 타이밍이 맞춰지게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작업에 있어 연출이나, 몰입도를 위해 따로 신경써서 하는 방법이 있다면?

엑스레이 영상 자체 해상도가 2200∼2800 픽셀을 못 넘어가요. 거기에 필름 사이즈가 가슴크기 정도로 작죠. 엑스레이 화면은 점에서 나오는 빛(광선)이라서 태양광선과 다르게 영상 주변이 확산돼 보여요. 대상의 부피에 따라 앞·뒤가 확대되고 달라지죠. 이걸 자연스럽게 합성한다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런 과정입니다. 사람 전신상에 약 30장 정도 촬영해 한 달 합성을 했어요. 촬영할 때 나오는 방사선도 문제였죠. 안전하지만 제 작업에 대한 깊은 교감을 갖는 대상만 촬영했어요. 많이 알려진 작품 중에는 엑스레이기기 회사 직원, 판독의뢰 왔다가 찍은 신경외과 동료, 특별히 자원한 병원 직원 등이 모델이었죠. 모두 제 작업에 공감해 준 고마운 분들이예요. 자연스럽게 대상이 자연물로 향할 수밖에 없었어요.

첫 초대전에 그림이 비싼 값에 팔렸다. 듣도 보도 못한 가격에…
나는 내 그림의 '값어치가 되느냐 아니냐'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값어치, 가치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게 됐다.
10 여 년 동안 100여회 전시, 12회의 개인전…
나름대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많은 나이에도
젊은 작가들과 소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집중하다보면, 특별히 노력하는 부분은?

거꾸로 생각해보니 기존 제도권 미술교육과는 별개로 그림을 시작하게 된 거죠. 미술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깊이 있는 학문인데, 이것을 공감하고 이해 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다양한 전시를 접하는 것이었어요. 국립현대미술관을 수시로 드나들었답니다.

 
예전 인터뷰를 보면 엑스레이가 '아날로그적'이고, '따뜻한 감성이 있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결과물은 포토샵 데이터거든요. 이것을 디지털이미지라고 부르고, 디지털은 차가운 색상을 갖는 한계가 있는데 그럼 엑스레이가 따뜻한 감성을 품은 아날로그적이란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날로그로 받아들이냐 디지털로 받아들이냐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아닌가요? 눈으로 아무리 사물을 잘 본다 해도 눈자체가 받아들이는 해상도가 300~600dpi를 못 넘어가요. 결국 눈 자체가 무한 아날로그는 아닌 거죠. 디지털도 아주 섬세하게 사물을 담을 수 있다면 우리가 받아들일 때 아날로그적일 수도 있겠다는 거죠. 마지막 출력을 할 때 보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감각을 아날로그로 만들어준다면 감성적으로 다가 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직접 만든 커피 로스팅기(사진 위쪽)와 오디오 진공관 앰프

화가 정태섭 작품의 아이덴티티는 바로 이것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은 사람의 욕구를 충족 시켜주는 것…. 인간이 느끼는 깊은 감성에는 '외면의 미'를 북돋워주는 '내면의 미'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내 작업은 결국 '내면의 미'를 찾는 과정이 아닐까요? 그래서 엑스레이인지도 모르겠어요. 디지털적인 베이스에서도 '따뜻한 감성'을 내면에 담을 수 있다는 작가의 여정을 보여주고 싶어요. 


요즘 근황이 궁금합니다.

매일 작품 활동만 할 수는 없지 않아요? 그림 작업하는 것 이외에 다양한 호기심 거리를 즐기고 있어요. 재충전 하는 거죠. 집이 만능공작소예요. 커피 로스팅기·오디오 진공관 앰프·공기청정기 등 이것저것 즐기면서 만들고 있답니다. 처음 아내가 맛있는 커피를 먹고 싶다고 해서 뚝딱거리며 로스팅기를 만들었어요. 아주 흡족해 해요. 공기청정기 부품은 집 앞 다이소에서 구해 만들었어요. 50∼60만원 하는걸 2∼3만원에 만들죠.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화가가 아닌 의사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드라이하게 살지 말고, 윤택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윤택하다'가 '돈을 많이 벌어 엔죠이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예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기 손으로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 보면서 해결해 보는 것,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진정 '윤택한 삶'이 아닌가 생각해요. '일상의 윤택'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예요. 의사 후배들도 함께 '소확성(소소하지만·확실한·성취감)'을 얻기 바랍니다.

출처 : 의협신문(http://www.doctor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