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과의 이별과 경인지역에서의 새로운 출발
- 국제성모병원 피부과 방동식 교수
추운 겨울도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계절에 베체트병 환자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지난 해 9월부터 정년을 앞두고 그동안 30여년 베체트병을 극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온 환자들과의 이별을 시작했습니다. 혹여나 주치의가 바뀌는 상태에서 환자들의 불안과 걱정이 염려되어 이에 대한 향후 진료 연계와 관련한 안내와 안심하실 수 있도록 진료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누구나 영원함은 없기 때문에 만남과 헤어짐은 인생을 살아감에 순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진료실에서 환자분들이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우실 때는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아픔을 느끼게 됨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돌보던 환자분들 중에 전신 증상이 너무 심해지셔서 병을 이기지 못하고 떠나신 분들을 지켜본 때의 아픔, 양안이 실명 되어가는 상태에서 회복 못하고 안타까움을 지켜보아야 하는 아픔, 혹은 투병의 어려움과 함께 가정이 파탄되는 환자의 힘겨운 삶을 지켜보아야 하는 안타까움 등이 겹쳐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14000명이 넘는 환자들과 진료를 마무리하는 과정이 6개월로는 어림도 없음을 12월을 넘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오시는 신환들도 미룰 수 없어 결국 정년을 마무리할 2월 말까지 외래 진료를 계속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과의 마지막 진료가 이루어지지 않아 죄송스러워 이 자리를 빌어 용서와 양해를 구합니다. 주치의가 갑자기 바뀌는 상황이 긴 시간 믿고 따라오던 환자분들에게 얼마나 불안과 당혹감을 주었을지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세브란스병원의 베체트병 특수클리닉은 30여년이 경과하면서 관련과의 협조가 잘 이루어져 있고, 피부과에서 후임으로 베체트병 환자들을 돌보아줄 김도영 교수님이 평소 함께 베체트병을 연구하고 환자들을 돌보아왔기 때문에 무리 없이 진료가 이어질 것으로 믿고 그리될 것입니다.
정년을 6개월 앞두고 지난 9월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베체트병 학술대회에서 부회장으로 선출되고 훌루시 베체트상을 수상하여 평생 한 질환에 올인 한 보람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기쁨과 보람은 환자들과의 이별을 통해 얼마나 환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입니다. 오히려 투병의 어려움 속에서도 주치의를 믿고 따라주신 여러 환우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많은 연구 업적들이 가능했었다고 생각하며 감사함과 영광은 환우 여러분께 돌아가야 할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지난해 영국의 저명한 학술지에 우리나라 베체트병의 임상양상이 30년간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를 우리의 자료로 발표했습니다. 전반적으로 베체트병 자체가 다소 경해지고, 실명율도 줄어든 양상을 보여 조기 진단과 치료가 도움이 되고, 신약의 개발, 환경의 개선 등이 결과에 반영되었을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이 자료는 희귀난치병을 길게 추적한 의미 있는 자료로 베체트병 호발국가들에 크게 도움이 되는 역학 자료가 되었습니다.
베체트병은 미국, 캐나다, 유럽에서는 매우 드문 병으로 의사들이 잘 모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40대 여의사가 베체트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지난 가을 이 여의사와 가족들이 이메일을 통해 진단과 치료 방법을 물어와 자세히 알려주면서 서신을 주고받게 되었는데 여의사 자신이 미국에서 오랜 기간 정확한 진단을 몰라 여러 가지 치료를 받아 왔으나 합병증만이 늘어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은 이 여의사를 데리고 한국에 오려고 했으나 워낙 상태가 안 좋아서 올 수가 없었습니다. 보내준 의무기록을 확인해 보면서 전형적인 베체트병 환자이고 이미 치료하기에는 늦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작은 희망의 끈은 놓지 않고 치료해 볼 수 있도록 약 처방을 적어 보냈습니다. 그러나 두 달 후 제대로 약도 써보지 못하고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부모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작은 도움도 주지 못한 것 같아 너무도 죄송함을 부모님께 전하였는데 부모님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너무 잘 해준 한국인 의사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한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베체트병이 무섭다는 생각과 그래도 우리 환자들은 국내에 이 병을 연구하는 의사들이 있고 관련과의 협진과 좋은 치료 방법도 있어 희귀 난치병이기는 하나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의사의 자녀가 2명인데 여의사의 부모님이 지난달 이 자녀들은 문제가 없을지를 물어서 검사해 볼 내용을 전해 주었습니다.
정년과 함께 잠시 쉴 생각도 있었는데 작년 인천 청라지구에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이 현대식 병원으로 국내외 환자들을 진료하고 의과대학생들을 교육하는 교육병원으로 출범하였습니다. 이 대학병원은 빠른 시일에 세계적 병원으로 발전을 추진하고 있어 새로운 꿈을 펼치는 의미로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기쁜 사실은 적어도 경인 지역에서 베체트병으로 고생하는 환우들을 돌 볼 수 있음과 전국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환자들이 있으면 진료와 자문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베체트병의 진단과 치료에 필요한 연구를 계속하여 베체트병의 극복을 위해 세계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3월 2일부터 새 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하면서 환우회에서 정동국 회장님과 임원 여러분들이 축하 난과 함께 방문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더욱 베체트병 환우들에 관심을 가지고 잘 돌보아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였습니다. 주변에서 정년을 하고 며칠이라도 휴식의 기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할 텐데 평소 성격처럼 쉼 없이 이어 간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첫 주이지만 입원 및 외래 환자들이 베체트병 진단을 위해 의뢰 되고 멀리 지방에서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어 여전히 베체트병은 국내에 상당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이미 안과, 소화기내과와는 협진 체계를 구축하여 진료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머지않아 베체트병 전문센터가 이곳에서도 이루어 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는 1주 3회 진료하고 많은 환자에 시간에 쫓기면서 진료하던 상황에 비하여, 이곳에서는 월 화 오후, 수 목 금 오전으로 매일 진료하고 있어 충분한 진료시간을 가지고 환자들을 돌볼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환자는 나의 가족원이라 생각하며 기쁨과 아픔을 같이 나누며 함께 투병해 나갈 때 아무리 희귀 난치병이라 하여도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점차 좋아지고 또한 좋아질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베체트병 환우여러분들이 하루하루 행복하고 즐거운 삶이되어지기를 손 모아 기도합니다.









